현대 민화로 유칼립투스를 그리며 배운 욕심을 덜어내는 연습.
잘 그리는 것보다 계속 그리는 마음, 민화 작업 과정 속에서 만난 작은 치유의 기록.

[현대 민화] 유칼립투스 그리기 | 욕심을 덜어내고 나를 채우는 시간 🌿
저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합니다.
“잘 그리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그리는 행위 자체를 좋아합니다.
잘 그리면 더없이 좋겠지만 막상 종이 앞에 앉으면 늘 스케치부터 막힙니다.
상상력의 문제일까요, 아니면 괜히 스스로를 어렵게 만드는 마음 때문일까요.
우리는 흔히 "잘 살아야 한다"는 강박만큼이나 "잘 그려야 한다"는 압박 속에 살곤 합니다.
하지만 완벽한 결과물보다 중요한 것은 '그리는 행위 그 자체'가 주는 위로라는 것을, 저는 최근 시작한 민화를 통해 배우고 있습니다.
오늘은 잎과 줄기의 단순함 속에 삶의 태도를 비춰보았던 저의 유칼립투스 작업기를 공유하려 합니다.
'비움'과 '채움' 사이에서 고민하는 모든 완벽주의자 분들에게 이 글이 작은 쉼표가 되길 바랍니다.
1. 현대 민화, 익숙함 속의 새로움을 만나다
민화라고 하면 보통 화조도나 호작도, 책가도 같은 전통적인 그림을 먼저 떠올립니다.
하지만 민화에 관심을 가지다 보니 ‘현대 민화’라는 영역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통 민화의 기법인 분채와 바림을 고수하면서도, 소재는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식물이나 사물을 다루는 그림.
"현대 + 민화"
이 조합은 제게 마치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익숙하지만 새롭고, 차분한 전통의 맛 속에 현대적인 감성이 흐르는 묘한 매력.
무엇보다 스케치 단계에서 늘 상상력의 한계에 부딪히던 저에게 이미 존재하는 자연의 선을 민화의 호흡으로 옮기는 작업은 큰 구원이었습니다.
2. 첫 번째 유칼립투스
- 단순함이라는 가장 어려운 시험대 -
이번에 처음 선택한 소재는 유칼립투스 폴리안이였습니다.
잎과 줄기만 있는 도안이었기에 “꽃보다 단순하니 조금은 수월하겠지” 라는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큰 착각이었습니다.



- 드러나는 본질: 화려한 문양은 시선을 분산시키지만, 유칼립투스처럼 단순한 구성은 그린 사람의 흔들리는 윤곽선과 서툰 바림을 투명하게 드러냅니다.
- 욕심의 무게: 그림이 마음에 안 들수록 저는 물감을 덧칠했습니다. 보완하려 했던 선택들이 쌓여 어느덧 그림은 탁해지고 무거워졌습니다.
- 깨달음: 바탕색의 농도가 너무 짙으면 그 위의 모든 색도 자연스럽게 두꺼워진다는 것. 시작 단계에서의 '적당함'이 전체의 호흡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배웠습니다
회복하려던 덧칠이 오히려 '짐의 무게'를 더하는 일은 아니었을까요?
우리 삶에서도 감당하기 힘든 문제를 해결하려 억지로 무언가를 덧붙이다 일을 그르치는 순간과 닮아 있었습니다.



🍃 유칼립투스(Eucalyptus)가 가진 서로 다른 성격 🌿
유칼립투스는 잎의 형태에 따라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진 식물처럼 느껴집니다.
둥글고 안정적인 잎의 유칼립투스 폴리안이 붓을 멈추고, 색을 아끼는 '절제'의 마음이라면
길쭉한 잎의 유칼립투스는붓을 억지로 붙잡지 않고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하는 '유연함'의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같은 유칼립투스라도 어떤 잎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림을 그리는 나의 호흡과 태도까지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3. 두 번째 유칼립투스
- "잘 보이게"보다 "덜 급하게" -
아쉬움을 뒤로 하고 많은 깨달음을 안은 채 다시 도전한 두 번째 그림은 열매가 있는 유칼립투스였습니다.
이번에는 스스로에게 한 가지만 약속했습니다.
"더 잘 보이게" 보다는 "덜 급하게" 그리자.
- 윤곽선은 차분하게 가다듬고,
- 바림(그라데이션)은 종이가 마를 시간을 기다려주며,
- 채색은 한 번에 끝내지 않고 층층이 쌓아 올렸습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확실히 제 마음의 속도는 첫 번째 그림보다 느려졌고, 그림을 그리는 순간의 집중과 위로가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4. 수채화를 그렸던 시절의 유칼립투스
제가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그리기'위해 애썼던 날들 속에도 유칼립투스는 있었습니다.






그때는 오래 이어가지 못한 경험이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시간 덕분에 색과 바림 앞에서 덜 두려워질 수 있었습니다.
🍃 유칼립투스
유칼립투스는 호주에서 가장 널리 재배되는 식물로 정화와 회복, 보호의 상징을 지닙니다.
대표적인 꽃말은 "추억, 기억, 치유, 새로운 시작".
그래서인지 유칼립투스를 그리는 시간은 그림 연습이면서 동시에 기억을 떠올리고 마음을 정리하며 스스로를 치유하는 시간이었습니다.


🌿 잘 그리는 것보다, 계속 그리는 마음
이번 유칼립투스 그림은 다시 도전했고, 포기하지 않았고, 이전보다 천천히 그렸다는 것만으로도 저에게는 충분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종종 내면의 높은 기준 때문에 시작조차 하지 못하거나 중간에 멈춰 서곤 합니다.
저 역시 수채화를 포함해 그리다 멈췄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경험이 있었기에 지금의 민화 작업에서 색을 다루는 두려움이 조금은 줄어들었습니다.
"잘 그리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리다 보면 어느 날, 그림보다 내 마음이 먼저 달라져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민화는 그런 내적인 변화를 조용히 기다려 주고 허락해 주는 참 너그러운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 민화를 그리면서 앞으로도 기억하고 싶은 점
√ 윤곽선은 드러내기보다 구조를 만드는 과정이라는 것
√ 바림은 기술보다 호흡이 중요하다는 것
√ 단순한 소재일수록 욕심이 그림을 망친다는 것
√ 다른 사람의 그림보다 이전의 내 그림과 비교하는 것이 오래 그릴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의 오늘 하루도 유칼립투스 향기처럼 맑고 담백하기를 바랍니다.

✨ 그리고 행복한 성탄절 보내세요 🎄
[현대 민화] 유칼립투스 그리기 | 욕심을 덜어내고 나를 채우는 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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