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이 만든 프로그램은 회사 것일까? 업무상저작물 판례가 남긴 질문

한 직원이 반복되는 업무를 조금 덜어 보려고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그 프로그램은 수치지도를 만들고 편집하는 일을 자동화하고, 오류를 확인하는 데 쓰였어요.

회사도 프로그램을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직원이 퇴사한 뒤, 그 프로그램의 저작권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두고 다툼이 생겼습니다.

회사에서 사용하는 결과물이니 회사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직접 만든 사람이 직원이니 직원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요. 대법원 2021. 9. 9. 선고 2021다236111 판결은 그 사이에 있는 질문을 살폈습니다.

회사가 사용했는가보다 먼저, 회사가 그 프로그램의 제작을 기획했는가.

업무상저작물을 이해할 때 이 차이가 중요합니다.


업무상저작물, 회사에서 만들면 모두 해당할까요?

저작권법은 저작물을 창작한 사람을 저작자로 봅니다.

다만 법에서 정한 업무상저작물이고 저작자 귀속 요건까지 갖추면 회사나 단체 등이 저작자가 될 수 있어요.

저작권법 제2조와 제9조를 함께 보면, 먼저 법인 등의 기획 아래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이 업무상 작성했는지 살펴야 합니다.

회사가 저작자가 되려면 원칙적으로 회사 명의로 공표되는 저작물이어야 하고, 계약이나 근무규칙 등에 다른 정함도 없어야 하지요.

업무상저작물의 다섯 요건 중 첫 번째인 법인 등의 기획에서 멈춘 대법원 2021다236111 사건

컴퓨터프로그램에는 예외가 하나 있습니다.

회사 명의로 공표되지 않아도 다른 요건을 갖추면 회사가 저작자로 인정될 수 있어요.

사내에서만 사용하는 프로그램이라고 해서 이 제도와 무관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공표 요건이 빠질 뿐, 회사의 기획과 업무상 작성이라는 요건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회사와 직원이 계약으로 저작재산권의 이전이나 이용 범위를 정한 경우는 또 별도로 살펴봐야 해요.

‘처음부터 누가 저작자인가’와 ‘누가 어떤 범위에서 저작재산권을 이용하는가’는 같은 질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계약에서 권리를 어떻게 정하는지는 저작권 양도와 이용허락의 차이를 다룬 글에서 더 살펴볼 수 있습니다.


직원이 만든 프로그램을 회사가 계속 쓴 사건

프로그램 개발부터 대법원 상고기각까지 2021다236111 사건 진행 과정

대법원이 공개한 사건 설명에 따르면, 직원은 2006년경부터 2014년경까지 수치지도의 제작·편집을 자동화하고 오류를 점검하는 프로그램들을 개발했습니다.

직원이 퇴사하고 사용 중단을 요청한 뒤에도 회사가 프로그램을 사용하자, 직원은 저작권 침해를 주장하며 소송을 냈습니다. 회사는 프로그램이 자사의 기획에 따라 만들어진 업무상저작물이라고 맞섰고요.

판결에서 가장 중요한 말은 ‘기획’이었습니다.

대법원은 회사의 기획이란 일정한 의도를 가지고 저작물의 작성을 구상하고, 그 구체적인 제작을 직원에게 명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 뜻이 꼭 문서로 드러나야 하는 것은 아니에요. 말로 지시했거나 여러 사정을 통해 묵시적인 기획이 인정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묵시적인 기획을 쉽게 추정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습니다. 회사의 뜻이 명시적으로 드러난 경우와 같다고 볼 만큼 분명한 사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서울고등법원(원심)은 회사가 프로그램의 작성을 구상하고 직원에게 구체적인 제작을 맡겼다고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대법원도 그 판단을 받아들였습니다. 이 판결을 읽을 때에는 회사가 프로그램을 업무에 사용한 사실과 회사가 제작을 기획한 사실을 구분해야 합니다.


판결이 정한 3,960만 원의 의미

법원은 이 프로그램들이 회사의 업무상저작물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회사의 저작권 침해를 인정했습니다.

원심은 저작권법 제125조 제2항에 따라 프로그램의 통상 사용료에 해당하는 3,960만 원을 손해액으로 정했습니다. 대법원은 이 판단에도 잘못이 없다며 회사의 상고를 기각했어요.

이는 업무용 프로그램을 만든 직원이라면 누구나 받을 수 있는 보상금이 아닙니다. 회사가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한 이 사건의 손해배상액입니다.

회사가 주장한 다섯 가지 정황과 객관적 증거 부족으로 기획을 인정하지 않은 법원 판단 비교

이 판결을 어디까지 읽어야 할까요?

결과물 앞에서, 누가 무엇을 구상하고 맡겼는지 다시 살펴봅니다.

이 판결은 ‘직원이 만든 프로그램은 언제나 직원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근무시간에 만들었는지, 회사 장비를 사용했는지 역시 혼자서 결론을 정하는 기준은 아니에요.

제작 지시가 실제로 있었는지, 그 일이 맡은 업무에 속했는지, 계약은 어떻게 정했는지를 함께 봐야 합니다.

제가 이 판결에서 주목한 것은 결과물보다 만들어지는 과정의 기록입니다.

필요한 기능을 제안한 때와 개발을 맡긴 때, 직원이 스스로 작업을 시작한 때는 서로 다를 수 있어요. 시간이 흐르면 그 경계가 흐려지기 쉽습니다.

직원에게는 담당 업무와 개발 경위, 지시 내용을 확인할 자료가 중요합니다.

회사도 제작 목적과 요청 내용, 검토 과정, 프로그램을 쓸 범위를 기록해 두어야겠지요.

어느 한쪽의 기록만으로 권리가 자동으로 확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나중에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는 분명해집니다.

또 프로그램의 저작권이 누구에게 있는지와 회사 자료·코드나 영업비밀을 사용할 수 있는지는 별도의 문제입니다. 이 판결의 결론을 다른 사안에 그대로 옮겨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해요.

업무상저작물 분쟁 전 직원과 회사가 챙길 실무 체크리스트

해외 회사와 일한다면 질문이 하나 더 생겨요

업무상저작물에 관한 더 최근의 판결에서는 적용할 법도 쟁점이 됐습니다.

대법원 2025. 7. 3. 선고 2025다209384·2025다209391 판결은 미국인 창작자와 미국 회사의 고용계약이 얽힌 도안 사건을 다뤘어요.

대법원은 저작권 자체의 보호에 적용할 법과, 고용관계를 바탕으로 업무상저작물의 권리가 처음 누구에게 돌아가는지 판단할 법을 구분했습니다.

원심은 최초 권리 귀속에 한국 저작권법을 적용했지만, 대법원은 이 고용관계에는 당사자가 정한 미국 와이오밍주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다만 문제 된 도안이 그 업무상 관계에 기초해 작성됐다고 볼 수 없어, 원심의 결론은 유지했어요.

2021년 사건이 회사의 기획을 인정할 수 있는가를 물었다면, 2025년 사건은 국경을 넘는 고용관계에서 어느 나라 법으로 최초 귀속을 판단할 것인가라는 질문까지 보여 줍니다.

두 판결의 쟁점은 같지 않습니다.

직장에서 만드는 글과 사진, 디자인, 프로그램은 어느 날 갑자기 완성되지 않습니다. 필요를 이야기하고, 누군가 만들기 시작하고, 함께 사용하게 되는 시간이 있어요.

그 시간에 누가 무엇을 구상하고 맡겼는지 살펴보는 일. 업무상저작물에 관한 이 판결은 권리의 이름을 정하기 전에 그 과정을 먼저 돌아보게 합니다.


참고 판결과 법령

저작권법 제2조·제9조

대법원 2021. 9. 9. 선고 2021다236111 판결 전문

대법원 2021년 판결 사건 설명

대법원 2025. 7. 3. 선고 2025다209384·2025다209391 판결 요지


※ 이 글은 2026년 9월 현재 시행 중인 저작권법과 공개된 판결문을 바탕으로 판결의 의미를 정리한 일반 정보입니다. 개별 계약이나 분쟁의 결론은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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