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떠난 뒤에도 끝나지 않던 질문들
회사를 그만두고 이사를 온 뒤에도
한동안 마음은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습니다.
밤이 되면 생각은 끝도 없이 이어졌습니다.
나는 그동안 무엇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살았던 걸까.
이렇게 놓아버릴 수 있는 것을
왜 그렇게 안간힘을 쓰며 붙잡고 있었을까.
상처가 날 때까지 움켜쥐고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생각은 자꾸만 거슬러 올라갔고,
어디부터 잘못된 건지 찾으려 하면 끝이 없었습니다.
하루 종일 누가 끌어내지 않으면
방 안에서, 집 안에서
몇 날 며칠이고 머물 수 있을 것 같던 시기였습니다.
그때의 우리는
자기 자신의 감정조차 제대로 추스르지 못한 채
서로의 상처를 건드리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 우리에게도 새로운 시작이 필요했습니다
지금의 우리가 누군가를 책임질 수 있을까
그 무렵의 우리는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할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예전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조차
잘 모르겠던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막막한 미래를 이야기하다 보면
늘 같은 곳에 마음이 머물곤 했습니다.
바로 한 생명을 가족으로 맞이하는 일이었습니다.
지금의 우리가 누군가를 책임질 수 있을까.
우리에게 그럴 자격이 있을까.
혹시 우리가 그 아이를 불행하게 만들지는 않을까.
수없이 고민하고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새로운 시작이 필요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무렵,
봄이를 만났습니다.



🌱 그렇게 봄이를 만났습니다
가슴으로 먼저 알게 된 아이
봄이는
2020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태어난 아이였습니다.
처음 봄이를 마주한 순간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동그란 눈으로 도도하게 앉아
마치 “나를 데려가라”고 말하는 것 같던 아이.
그 순간 이상하게도
가슴 안에서 무언가가 울컥 올라왔습니다.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했고,
웃음이 날 것 같기도 했습니다.
아직도 그게 정확히 어떤 감정이었는지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다만 지금은
봄이가 우리를 선택해 준 건 아닐까 생각합니다.
너무 작고 연약한 1kg의 강아지.
혹시라도 다칠까
조심조심 쓰다듬으며
우리는 이미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2021.3.20. 우리집에 봄이 온 날
🌱 작은 강아지가 바꾸어 놓은 생활
처음에는
이 1kg도 되지 않는 작은 강아지의 쉬아를
하루에 열두 번도 넘게 치우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생활 덕분에 밤잠을 잘 자게 되었습니다.
분리수면이 좋다는 말을 듣고
얼른 아침이 오기를 기다리며
“봄이, 잘 자.”
인사한 뒤 기분 좋게 잠드는 날들이 생겼습니다.
1년쯤 지나
배변과 배뇨를 잘 가리는 개린이가 되었을 때
혹시 같이 자고 싶지 않을까 싶어 방문을 열어주었더니
봄이는 망설임도 없이 침대로 달려왔습니다.
그리고는 아침까지
새근새근 제 옆에서 잠들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분리수면을 하던 시절에도
봄이는 아침을 기다렸던 것 같습니다.
밤이면 잘 자던 아이가
새벽 5시만 되면 방문을 긁곤 했으니까요.






봄이는 우리를 바깥으로 데리고 나왔습니다
하루 종일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며
집 안에만 있던 저였지만,
봄이를 위해 하루에 적어도 두 번은 밖으로 나갔습니다.
산책을 위해서.
그리고 분리불안을 예방하기 위해
혼자 있는 연습을 시켜주기 위해서.
집 앞 산책길을 걷고,
뒷산에 올라가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사진을 찍고,
좋아하던 꽃 사진도 다시 찍기 시작했습니다.
집 밖에서 잔뜩 바람 냄새를 묻히고 돌아오면
통실통실한 털뭉치 하나가
온몸으로 반겨주었습니다.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이렇게 큰 힘이 되는 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입맛이 없어서 밥을 안 먹는 것이 아니라,
사람은 정말 행복하면
배가 부를 수도 있다는 것을.






조용한 웃음치료사 봄군
봄이는
어쩌면 트레이너 같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봄이를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돌아보면 가장 많이 배우고 있던 건 우리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밤 9시면 잠드는 아이 덕분에
우리의 취침 시간도 빨라졌고,
늦어도 아침 7시에는 밥을 먹어야 공복토를 하지 않는 봄군 덕분에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느 날부터는 실내배변도 하지 않아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춥든 덥든 산책을 나가야 했고요.
무엇보다
정말 많이 웃게 되었습니다.
조용히,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웃기는 웃음치료사 봄군 덕분에요.
그러다 문득
너무 소중해서 마음이 아려오기도 했지만,
있는 힘껏 사랑할 수밖에 없게
정신을 빼놓는 통에
울다 웃다는 기본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는 부모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한 생명을 제대로 책임진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함께 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씻기고, 먹이고, 치우고, 재우고, 놀아주고, 산책하고.
이 모든 과정을
혼자서는 절대 해낼 수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상의하고, 돕고, 응원하게 되었습니다.
봄이와 더 오래, 더 잘 놀아주기 위해
밥도 잘 챙겨 먹고
운동도 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는 부부에서 부모가 되어가는 중이었던 것 같습니다.
각자
“내가 더 힘들다”고 다투던 우리는
어느새 서로를 응원하고 상의하는
봄이의 엄마 아빠가 되어 있었습니다.
마치 우리 마음 안에
아주 작고 귀여운 새싹 하나가
천천히 자라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저 깊은 마음속
웅크리고 있던 우리 자신도
천천히 세상밖으로
걸어나오게 되었습니다.


🌱 우리 집에 찾아온 ‘봄’
봄이라는 이름에는 여러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사실 이 이름은 오래 고민해서 지은 이름이 아니라,
데려온 그날 자연스럽게 입에서 나온 이름이었습니다.
봄(Spring)에 우리 집에 온 아이.
우리 집의 봄날이 시작되어서 봄.
자꾸 바라보게 되어서 봄(see).
어쩌면 이게 사랑인가봄.
무엇보다
‘봄’이라는 단어와 함께 떠오르는
따뜻한 공기와 냄새와 분위기가
그 아이와 너무 잘 어울렸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봄이가 제 곁으로 올 때입니다.
“봄이 왔어요!”
그 말을 하는 순간마다
이상하게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정말 우리 집에는
1년 365일 내내 봄이 오고 머무르는 것 같았습니다.



정말 우리 마음에도 봄이 온 거였습니다
돌아보면
봄이는 우리를 갑자기 행복하게 만들어 준 기적 같은 존재라기보다,
다시 살아가도록
조금씩 삶의 방향을 바꾸어준 존재에 가까웠습니다.
우리는 봄이를 키운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봄이가 우리를 다시 살아가게 만들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무너진 마음으로
서로의 상처를 붙잡고 있던 사람들이,
어느 날부터
함께 웃고, 산책하고, 밥을 챙겨 먹고,
내일을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시간의 한가운데에는
작고 따뜻한 털뭉치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봄이는 단순히 우리 집에 온 작은 강아지의 이름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정말 우리 마음에도 봄이 왔고,
우리 집에도 봄이 온 거였다는 것을.

🌿 정말 우리 마음에도 봄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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