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한 권이 데려온 오래된 마음들 | 나태주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를 읽고

이번 생일에 나는 나에게 시집 한 권을 선물했습니다. 

시인 나태주의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원래 시집은 천천히 읽는 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루에 몇 편씩 아껴 읽고, 마음에 드는 시는 곱게 표시해 두었다가 나중에 다시 꺼내 읽으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책을 펼친 첫날부터 나의 계획은 무색해졌습니다.

좋은 시를 만날 때마다 필사하겠다는 마음으로 펜을 들었는데, 곱고 마음에 닿는 시가 생각보다 너무 많았습니다.
몇 편만 적어두려던 손길은 어느새 여러 페이지를 채워갔고, 자칫하면 책 한 권을 통째로 받아 적을 뻔했습니다.

사랑스럽고, 귀여우며, 때로는 가슴 아린 시들을 마주하며 '어떻게 인간의 마음을 이토록 투명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감탄과 놀라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도서 정보

도서명: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저자명: 나태주

펴낸곳: 열림원

펴낸날: 2022년 6월 7일(1쇄), 2025년 12월 8일(23쇄)

🌿 시의 품에서 다시 만난 엄마, 그리고 그리움

가장 먼저 발걸음이 멈춘 곳은 「하늘 이별」이라는 시 앞이었습니다.

날마다 만나도 만나고 싶은 사람. 눈앞에 있어도 보고 싶은 사람. 그리고 이제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사람.

이 구절을 읽어 내려가며 자연스럽게 엄마의 얼굴이 겹쳐졌습니다.

해가 뜨면 해가 뜨는 대로,
달이 뜨면 달이 뜨는 대로,
별을 보면 별을 보는 대로

문득문득 떠올리던 사람.

“엄마, 나 여기 잘 있어.”
“엄마는 잘 있지?”

마음속으로 수없이 되뇌던 날들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이어진 「문안인사」라는 시에서는 첫 구절을 읽자마자 가슴 깊은 곳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휴대폰 연락처에서 차마 지우지 못한 ‘엄마’라는 이름과 번호.

그 문장을 마주하는 순간 가슴이 턱 막혀왔습니다.

번호를 누른다고 해도 이제 전화를 받을 사람은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가끔은 무작정 전화를 걸어 “엄마” 하고 크게 불러보고 싶은 간절함이 아직 내 안에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못난 아들」을 읽을 때에는 꿈속에서 아픈 엄마를 보고도 아무것도 해드리지 못한 채 깨어나 미안함에 한참을 울었던 기억까지 떠올랐습니다.

시를 읽고 있었지만, 어느새 그것은 시인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가장 깊은 고백이 되어 있었습니다.


🌿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나를 살리는 다정한 한마디

이 시집에서 가장 오랫동안 마음을 붙잡아둔 시는 역시 표제작인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였습니다.

너,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그 한 문장을 읽는데 이상하게 자꾸만 눈물이 흘렀습니다.

마치 누군가가 내 곁에 앉아 진심 어린 눈빛으로 걱정해 주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조금은 안쓰러운 듯이, 또 한편으로는 한없이 다정하게 “이제 그러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속삭여주는 느낌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나는 참 쉼 없이, 그리고 너무 잘하려고 애쓰며 살아왔습니다.

공부도, 일도, 관계도 늘 부족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완벽해야만 나의 쓸모를 인정받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몸과 마음이 지쳐 비명을 지를 때도 최선을 다했고, 작은 실패라도 마주하면 스스로를 더욱 모질게 몰아붙였습니다.

하지만 시는 내게 나직하게 말해줍니다.

오늘도 수많은 일들을 겪어냈고, 견디기 힘든 순간들까지 용케 버텨냈다면 오히려 스스로를 칭찬해 주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오늘의 일은 오늘의 노력만으로 충분하니, 제발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말라고 위로합니다.

생각해 보니 살면서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항상 “묵묵히 최선을 다해라”, “더 버텨내야 한다”는 채찍질은 많이 받았지만, “이 정도면 괜찮다”,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손을 잡아주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시집은 그렇게 나에게 가장 필요했던 쉼표를 선물해 주었습니다.


🌿 내면의 그늘을 응시하는 힘: 죽음과 사탄에 대하여

모든 시가 편안하고 달콤한 위로만 준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마주하기 불편한 진실을 들이밀기도 했습니다.

「요절」이라는 시를 읽을 때는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졌습니다.

아마도 ‘죽음’이라는 단어가 주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죽음 앞에서 본능적으로 멈칫하게 됩니다.

슬플까 봐 미리 겁을 먹고,
괜히 경건해지거나,
애써 고개를 돌려 다른 생각을 하려 듭니다.

한동안 그 시의 언저리에 머물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나는 왜 이 단어가 이토록 불편할까.’

그것은 시가 좋아서도, 완벽히 이해해서도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죽음이라는 필연적인 유한함 앞에서 비로소 드러나는 나의 가감 없는 민낯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마찬가지로 「사탄은 있는가」라는 시 또한 깊은 성찰을 이끌어냈습니다.

타인이 나에게 준 상처를 곱씹기보다, 문득 두려운 자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나 역시 누군가의 인생에 사탄과 같은 상처를 남기지는 않았을까.’

그리고 더 무서운 깨달음은 내 마음이 지옥인 한, 나 자신에게 가장 잔인한 사탄은 바로 나 자신일 수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스스로를 끊임없이 비난하고,
사소한 실수도 용서하지 못하며,
오직 부족한 점만 찾아내 괴롭힌다면

가장 고통받는 존재는 결국 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깨달음이 절망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나를 지옥으로 밀어 넣는 존재가 나 자신이라면, 반대로 그 어두운 구덩이에서 나를 끌어올려 구원할 수 있는 존재 또한 오직 나 자신뿐이라는 건강한 주체성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 무장해제된 웃음과 이유 없는 사랑

무방비 상태에서 맑은 웃음을 터뜨리게 만든 시도 있었습니다.

바로 「돌아가는 길」이라는 시였습니다.

절간 앞에서 간절히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엄마의 모습을 본 아이가, 길가에 피어난 꽃에게도 나무에게도 똑같이 두 손을 모아 절을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그 시를 읽는 순간, 아무런 준비도 없이 무장해제되어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엄마가 온 마음을 다해 조아리는 대상이라면 세상 모든 존재가 귀하고 절할 만한 대상이라 믿는 아이의 순수함이 너무나 사랑스러웠기 때문입니다.

그 시를 읽는 동안만큼은 그 아이에게 부드럽게 웃어주는 하늘의 흰 구름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또한 「봄」이라는 시의 한 구절은 사랑의 본질을 다시금 생각하게 했습니다.

이유가 따로 있는 건 아니다. 그냥 봄이 봄이니까 꽃이 피어나는 거다.

이 문장 아래에 연필로 조용히 나의 문장을 덧붙여 적어보았습니다.

“이유가 따로 있는 건 아니다. 그냥 봄이 봄이어서 사랑하는 거다.”

어쩌면 우리가 정말로 좋아하는 것들에는 구태여 거창한 이유가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꽃을 좋아하는 이유,
푸른 하늘을 좋아하는 이유,
뺨을 스치는 바람을 좋아하는 이유,
그리고 누군가를 마음 깊이 사랑하는 이유까지.

세상의 가장 소중한 것들은 말과 글로 설명할 수 없는 영역에 존재하곤 합니다.


🌿 INFJSoul…시를 읽은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읽었습니다

시인이 살았던 낯선 동네 이야기나 그의 지인들에 관한 시들은 완벽히 이해하기 어려울 때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는 마치 가벼운 교양 인문서를 읽듯 한 걸음 물러서서 편안하게 읽어 내려갔습니다.

세부적인 배경을 다 알지 못해도 괜찮았습니다.
신기하게도 머리의 이해보다 가슴의 공감이 훨씬 먼저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시인이 바라보던 작고 초라한 꽃을 함께 바라보고, 그가 그리워하는 사람의 실루엣을 따라가며 내 안의 외로움과 따뜻함을 포개어 보았습니다.

책을 덮고 난 뒤 찾아온 감상은 거창한 분석이 아닌, 그저 ‘참 좋았다’는 단순하고도 묵직한 평온함이었습니다.

꽃과 나무, 하늘을 사랑하고 가족을 아끼며, 먼저 떠난 이들을 오랫동안 그리워하는 시인의 온기가 책장 구석구석에 깃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책장을 덮고 나서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습니다.

‘왜 이 시집이 이토록 내 마음에 깊숙이 들어왔을까.’

그것은 단순히 아름다운 시를 읽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시라는 거울을 통해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내 안의 소중한 마음들을 다시 만났기 때문입니다.

먼저 떠난 사람을 그리워하는 애틋한 마음,
잘해야만 한다며 스스로를 세차게 몰아붙이던 안쓰러운 마음,
아이처럼 이유 없이 무해하게 웃을 수 있는 순수한 마음,
계절의 변화와 바람 한 점에 감동하는 다정한 마음.

    시집 한 권을 읽는 동안 나는 몇 번이나 울었고, 몇 번이나 웃었으며, 또 여러 번 길을 잃고 멈춰 섰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나는 시를 읽은 것이 아니라, 그동안 잊고 지냈던 내 마음을 다시 만나고 있었다는 것을요.


    시집 한 권이 데려온 오래된 마음들 | 나태주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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