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머리를 자르던 날|울고 웃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

앞머리를 자르던 날

미용실에 다녀왔습니다.

단정하게 정리된 머리를 바라보다가
문득 아주 오래전 일이 떠올랐습니다.

어릴 적 우리 집에는
작은 미용실 같은 풍경이 있었습니다.

냉면 그릇과 바가지머리의 시절

오빠의 머리는 늘 같은 방식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오빠는 스테인리스 냉면 그릇을 머리에 얹고 앉아 있곤 했습니다.

엄마는 그 선을 따라 가위를 움직였고,
그러면 신기하게도 동그란 바가지머리가 완성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꽤 단순한 방식인데도
늘 제법 귀여운 머리가 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긴 머리를 좋아해서
머리를 자를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앞머리가 너무 만들고 싶어졌습니다.

엄마의 가위와 반곱슬 앞머리

문제는 엄마가 아니라 제 머리카락이었습니다

엄마는 분무기로 머리를 적시고
빗으로 앞머리를 가지런히 모았습니다.

그리고 한 손으로 머리카락을 팽팽하게 당긴 뒤
눈썹 정도 길이에 맞춰 망설임 없이 가위를 움직였습니다.

샤각.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저는 반곱슬머리였고,
엄마 손에 팽팽하게 잡혀 있던 앞머리는
손을 놓는 순간 스프링처럼 튕겨 올라갔습니다.

푱.

앞머리는 눈썹 위 한참에서 멈춰 있었습니다.

세상이 끝난 줄 알았던 어린 마음

어린 시절에는 작은 일도 세상의 전부 같았습니다

순간 세상이 끝난 줄 알았습니다.

내일 학교는 어떻게 가지.
친구들이 보면 어떡하지.
왜 하필 이런 머리가 되었지.

어린 마음에는 그 일이 너무 커서
저는 결국 바닥에 주저앉아
두 다리를 번갈아 허우적거리며 엉엉 울어버렸습니다.

엄마는 당황하신 건지,
웃음을 참고 계신 건지 모를 얼굴로
“귀엽잖아. 잘 어울려.”
하며 저를 달래주셨습니다.

우리 집 가훈은 정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날의 저는 정직보다 위로가 더 필요했습니다

그때 제 울음소리를 듣고
아빠가 방으로 들어오셨습니다.

“무슨 일이야?”

저는 울먹이며 말했습니다.

“엄마가… 앞머리를… 흑…”

엄마는 아빠 뒤에서 조심스럽게 물으셨습니다.

“귀엽지? 괜찮지?”

지금 생각하면
엄마도 꽤 간절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 짧은 순간,
저도 울음을 잠시 멈추고
아빠의 대답을 기다렸습니다.

우리 집 가훈은 “정직”이었습니다.

아빠는 늘
어떤 상황에서도 정직해야 한다고,
진실은 결국 통한다고 말씀하시던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날도
아빠의 신념은 아주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잘못했으면 인정해야지.
애한테 제대로 말해줘야 하는 거야.”

저는 결국
멈췄던 울음을 전보다 더 크게 터뜨렸습니다.

시간이 지나 웃을 수 있게 된 기억

결국 오래 남는 건 머리 모양보다 그날의 분위기였습니다

다음 날에도 앞머리는 여전히 짧았고,
저는 한동안 삔으로 앞머리를 옆에 고정한 채 학교에 다녔습니다.

그때는 세상에서 가장 큰일이 난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는 웃음을 참느라 혼나셨고,
아빠는 끝까지 정직하려다 저를 한 번 더 울렸습니다.

이상하게도 시간이 흐르고 나니
망한 앞머리보다 더 오래 남은 건
그날의 공기와 가족들의 표정입니다.

아마 그래서 어린 시절은
완벽해서가 아니라,
서툴러서 더 따뜻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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